작성일 : 10-12-06 13:25
[중앙SUNDAY] 아이들은 믿는 만큼 달라진다
 글쓴이 : 더코칭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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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믿는 만큼 달라진다

정미홍 방송·더코칭그룹 대표 | 제195호 | 20101205 입력 <IFRAME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Article/@reporter"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IFRAME>
몇 년 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한 아이를 돕기 위해서였다. ‘페닐케톤뇨증’이라는 선천적 대사 장애를 앓고 있던 이 아이는 내가 아는 선배의 아들이었다. 페닐케톤뇨증은 우리나라에 환자 수가 10명 안팎에 불과한 희귀병. 몸에서 생산되지 않는 효소를 매일 공급해 주지 않으면 중증 뇌성마비의 증상을 보이며 움직이거나 말할 수조차 없는 무서운 병이다. 스위스에서만 생산된다는 이 효소는 값이 엄청나게 비싸서 선배는 한 달에 1200만원이나 드는 두 아이의 효소 값을 대기 위해 부부가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다.

아무리 효소를 먹는다 해도 아이들은 정상적일 수 없어서 걷는 것도 비틀거리고, 말은 어눌하고, 제 힘으로는 병뚜껑도 열 수 없을 정도로 연약했다. 딸은 여학교에 다닌 덕에 큰 피해가 없었는데 아들이 문제였다. 한눈에도 이상해 보여서인지 같은 반 아이들은 끊임없이 때리고, 넘어뜨리고, 놀려대거나 물건을 빼앗았다. 어느 날 아이의 등에 연필로 깊고도 길게 파인 상처를 발견한 선배가 서럽게 우는 것을 보고 내가 나섰다. 선배는 “말로 되겠느냐”며 반신반의했지만, 담임 선생님을 설득해 특별히 한 시간을 얻어 냈다. 수업 시간에 모르는 아주머니가 갑자기 출현하자 ‘와글벅적’하던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먼저 아이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인과 증상, 비싼 치료 효소 등을 말해 주었다. 이어 아이와 부모가 병명을 몰라 처음에 얼마나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는지, 효소 값을 대기 위해 부모가 얼마나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들을 따라가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 하나씩 설명했다. 그동안의 폭력과 괴롭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우연히 함께하게 된 ‘동행’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은지 4개 그룹으로 나누어 토론을 시키고 결과를 발표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저마다 자발적으로 친구를 돕는 방법과 대책에 대해 열띤 토의를 했고 결국 아이가 등교할 때부터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상황별로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전략을 짰다. 다른 반 학생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심지어 폭력적인 상황에 대비한 경호팀까지 만들어 친구를 보호하기로 했다. 선배가 한시름을 놓게 된 것은 물론이다. 사실 나도 확신은 없었다. 다만 진실을 알리고, 아이들의 진심을 믿고 대화를 하면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달라진다. 나는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청소년 품성 교육의 부재라고 믿는다. 품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과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체득되는 것이다.

언젠가 미국의 한 유치원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장면이 있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둘씩 나오게 해서 서로 마주 보고 지나가다 몸을 부딪치게 하는 것이었다. 부딪칠 때마다 ‘익스큐스 미(Excuse me)’ ‘아이 엠 소리(I am sorry)’를 말하는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입에 밸 때까지 100번쯤은 시킨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살다 돌아온 어느 친구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통나무를 교실로 운반해 와서는 아이들에게 들게 하는데 처음엔 혼자서 들어보게 한 다음, 통나무가 쉽게 들릴 때까지 한 명씩 추가한다. 꿈쩍도 않던 거대한 통나무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니 번쩍 들리는 걸 통해 협동의 중요성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미국·일본은 물론 선진 각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품성을 효과적으로 쉽게 체득시키기 위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실제로 유아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연령에 맞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입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나마 있던 윤리 시간까지 없앴다고 들었다. 신뢰, 책임감, 성실, 경청 등 건강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품성들의 개념조차 정확히 못 배웠지만 어른이 되면 저절로 다 알고 실천하게 된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가치에 대한 교육 부재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신문을 들추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더 늦기 전에 교육 당국, 학교 그리고 부모들이 한마음으로 아이들의 품성 교육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